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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김병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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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분량은 길지 않은 70쪽 정도이고, 책의 줄거리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안의 담긴 작가의 메시지는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주인공이 매우 삶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회적 시선에 자신을 맞춰 행동하기를 극단적으로 귀찮아 하는구나"라고 이해하고 읽었습니다. (뒷 문단에 결말있으니 주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주인공은 엄마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원래의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지인의 시비에 휘말리고, 그로 인해 우발적 살인을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됩니다. 검사는 그가 엄마의 죽음에도 냉정한 '본성부터 살인자'라며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에 공감이 갑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한 행동을 남들에게 납득가도록 설명해야 할 때 피곤했던 경험은 한번 쯤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그렇다할 피해를 끼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살인을 제외하고) 재판 때 기분이 오묘합니다. "검사가 너무 본질부터 살인자라고 몰아가네" 라고 말이죠.
주인공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감정적 반응(장례식에서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을 보이지 않아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 때문에 형 선고에서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아마 엄마의 죽음이 사건 전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감형이 이루어졌을 수 도 있겠죠. 한편, 주인공보다 악랄한 사람이 범행을 저지르고 유명 변호사와 짜고 뉘우치는 연기, 불쌍한 연기를 해 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왠지 아이러니하네요.
정리 하자면, 주인공은 살인을 저질렀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카뮈의 작품을 통해 "그 벌을 내리는 기준이 공정하지 않고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의존적이다", 따라서 부조리한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 S.
그런데 왜 주인공은 자신을 변호하기를 포기한 것일까요? 분명 그가 살인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욕구가 약해서 꾸밈없이 행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그는 결국 삶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끝까지 '사회적 의견에 동조'하기보다는 자신의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이방인으로서 죽음을 대면하겠다는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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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고른 명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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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 충격적인 내용에 비해, 문체에는 너무나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삶에 대해 무심하고 감정이 무뎌진 주인공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P326) 어떻게 보면, 사건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나는 조금도 참여하지 못한 채 이루어졌다. 그들은 내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내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도대체 누가 피고란 말이오? 피고도 중요하지 않소? 내게도 할 말이 있단 말요."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할 말이 없기도 했다.
> 자신의 재판에서 마치 이방인인 것 처럼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P342 책의 끝부분: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대칭 구조) 그가 나가 버리자 내 마음도 차츰 가라앉았다. 나는 기운이 빠져 침대 위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얼핏 잠이 들었더너 모양이다. 눈을 뜨자 별이 보였으니 말이다. 교외의 소리들이 내 귀까지 들려 왔다. 밤의 향기, 흙 냄새, 소금 냄새가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여름밤의 신비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때 밤의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왜 말년에 엄마는 '약혼자'를 정했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며 보려고 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 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 처음에 잘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인데, 늙어 삶의 끝이 가까이 있더라도 사람은 적응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표현같습니다. /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에 가까워져 엄마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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